 흰 치마에 꽃잎이 붉게 물들고, 흰
속옷에 초승달이 붉게 차오르면, 아버지를 부여잡은 자식 없는 어미의 손도 붉게
물들고, 가녀린 소녀의 뱃속에 움텄던 보름달은 붉게 피눈물을 흩뿌렸다. 26살의 어린
여성 감독의 손과 눈과 입과 마음으로 전달된 세 여자의 이야기는, 결코
쉽지 않은 주제만큼이나 육중한 무게로 삶을 짓누르는 소재들로 인해 막막하고 불편하게
다가왔다. 현실은,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변함없이 여성들에게 결핍과 수치심을 안겨줬다.
미숙하지만 거짓 없이 <슬리핑 뷰티>를 연출한 이한나 감독은 아직 모순 속에서
끊임없이 고민하는 청춘, 그 자체다. 영화가 세상을 변하게 할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시간이 지나며 점차 무뎌져 가는 자신에 조급해하고, 평생 영화를
하고 싶어 하면서도 타협하지 않는 자신만의 이야기를 원하며, 여성 이야기를 계속
하고 싶어 하면서도 거짓말 안하고 대중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자신감의 부재를 걱정한다. 그 풋풋한 청춘의 세계관이 시간이 지날수록 어떤 식으로든
농익어 갈 때, 우리는 어떤 영화를 만나게 될까.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도
좋은 것들이 많다면, 어쩐지 이한나 감독에게는 섣부른 희망을 덧씌우고 싶지 않다.
일말의 소통과 가능성에 대한 변화를 믿어보는 것, 그것으로 족하다. 슬프지만 진실이다.
흔히 사람들이 말하는 씨네 키드에요. 어떻게 영화에
꽂히게 된 건가요?
중학교 때 방송반이었는데, 우연히 잡지
키노를 봤어요. 그때 키노가 <춘광사설> 심의 반려 특집본이었어요. 그전에는 주말의 영화
말고 극장에서 영화를 한 번도 본적이 없었거든요. 잡지 한 권을 보고
영화감독이라는 직업이 있다는 걸 알았고, 영화가 예술이라는 걸 알았고, 나도 영화를
찍을 수 있다는 생각을 했죠. 그때 6mm 카메라가 처음 나와서 방송반에
있었는데, 우리에게는 꿈의 카메라였어요. 그것만 있으면 영화를 다할 수 있으니까. 부모님을
졸라서 그 유명한 TRV900이라는 카메라를 사기도 했어요.(웃음) 로망이었죠. 그때부터 영화를 찍게
되었어요. 자주 찍은 건 아니고, 중학교 때 한 편, 고등학교 때
두 편.
어린나이에 영화에 관심을 갖고, 감독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갖게 되더라도 막상 실천에 옮기는 게 쉬운 일이 아니잖아요.
세대가 틀려서 그런가? (웃음)
어렸을 때는 뭐하나 꽂히면
쭉 가게 되는 일들이 많잖아요. 그냥 꽂혔던 것 같아요. 왕가위라는 이름
하나에.
처음 만든 영화는 어떤 내용인가요?
얼마 전에 인터뷰 하면서 제목을 물어보니 그때 생각나더라고요. 제목이 <비행기>였는데,
여중생한테 남동생이 있는데 지능이 좀 떨어지는 친구에요. 돌멩이나 화장품을 보고 자꾸
비행기라고 하는. 그리고 그 소녀의 비행기, 즉 비행을 저지르는 그런 설정이었는데,
엄마 아빠가 만날 싸우다가 아빠가 엄마를 죽이고 감옥에 가서 둘 만
남아요. 소녀는 학교를 그만두고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동생은 보호소에 맡겨두고 동생
면회 가면서 영화가 끝나요. 제가 이렇게 말하니까 스토리가 있는 것 같지만,
막상 보면 이 스토리가 맞아, 이해가 안 되셨을 거예요(웃음). 그때는 역광이
뭔지 몰라서 진짜 까맣게 만들어놓고, 슛할 때 녹화를 해야 하는데 반대로
해놓고 어디 갔어, 이랬고(웃음). 그러던 시절에 찍은 거니까 이상했죠.
그때부터 벌써 죽음을 이야기하고... 성장 과정이 어땠기에...? 즐겁고 밝은 얘기도
많았을 텐데요.
그런 것도 많을 텐데, 역시나 어두운
쪽의 작은 일들이 저한테는 크게 꽂히고, 밝은 쪽의 큰일들이 저한테는 슉
지나가고(웃음). 어둡고 슬픈 얘기들에 너무 쉽게 매료가 되요. 한마디로 얄팍하죠(웃음).
그렇게 시작을 했지만 지금까지 계속 감독을 하게 된 계기도
도중에 있었을 것 같은데요.
원래 꿈은 작가였어요. 초등학교,
중학교 때는 주말마다 학교 대표로 백일장 나가는 게 일이었어요. 그때 서울
구경하는 게 좋았어요. 사실 송탄이라고 별로 서울에서 먼 곳이 아닌데, 미군
부대 근처라 독립기념일이 우리나라 축제인 줄 알고 컸어요(웃음). 중학교 때 영화
한편 그렇게 찍어놓고, 고등학교 때는 평범하게 책이나 보고 가끔 시나리오나 끼적거리고
지냈고요. 명동에 참교육 영상집단이 있었고, 거기서 청소년 영상제작단이라고 그 당시 처음으로
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시나리오 공모를 해서 제작지원을 하는 게 있었어요. 그래서 거기에
시나리오를 냈는데 당선돼서 영화를 제대로 찍었죠. 명동에 오는 게 되게 좋았어요.
명동 길거리에 쓰레기만 남는 시간대가 있잖아요. 그때까지도 애들이랑 사랑하는 감독 얘기하면서(웃음).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 올라오는 게 일이었고, 고등학교 때 찍었던 영화가
단국대에서 하는 청소년 영화제에서 상을 받아서 단국대 입학이 정해졌어요. 그러니까 수능을
보기 싫은 거예요. 그 이후로 고등학교 3학년 때는 내내 아르바이트하고, 영화
보러 다니고 그랬어요. 좋은대로 편하게 지내다보니까 지금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아카데미는 언제 들어간 건가요?
올해요.
전에 떨어졌거든요(웃음). <슬리핑 뷰티>가 아카데미 포트폴리오였어요. 그 당시는 가편집본이기는 했지만요.
시사회에서 최익환 감독님을 만났어요(웃음).
제
선생님이세요(웃음).
네, 제자 영화 보러왔다고 하시더라고요(웃음). 근데 잘
매치가 안 돼요. 최익환 감독님 제자가 만든 영화가 이렇다니(웃음). 근데 실제로
만나보니 두 분 성격이 비슷한 것 같네요.
네.
저희 되게 잘 맞아요(웃음).
영화 보고 최익환 감독님이
뭐라고 하던가요? 제가 물어보니 ‘영화를 하도 많이 봐서’라고만 말씀하시더라고요(웃음).
많이 보셨죠(웃음). 저한테는 ‘세다’(웃음). 근데 세다는 얘기는 늘 듣는 얘기니까.
다음 영화로 독립장편 준비를 예전부터 하고 있었는데, 그 시나리오를 초반에 보셨어요.
그 시나리오 가지고 계속 얘기해주셨고요.
그건 어떤 내용의
영화인가요?
많이 퍼트려야지(웃음). 제목은 <아가미>에요. 이번 아카데미 졸업영화는
대리모를 소재로 한 38분짜리 중편인데, <아가미>는 잠깐 이슈가 됐던 리틀 맘을
소재로 한 영화에요. <제니, 주노>같은 행복한 영화가 아니라, 좀 더 리얼하게
애들이 애 낳고 사는 이야기죠. 잘돼야 할 텐데(웃음).
제목과 리틀 맘과는 어떤 연관이 있는 거예요?
어떻게는
우리는 살아야한다는 이야기(웃음). 사실 물고기도 나오긴 하고요(웃음).
<슬리핑
뷰티>의 첫 출발은 어디서 시작된 건가요?
너무 무책임한
얘기 같아서(웃음). 사실 꿈을 꿨거든요. 버스터미널인데, 이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봤어요.
교복 입은 남자랑 비슷한 또래의 임산부 여자애랑 나란히 앉아서 정물처럼 꼼짝도
않고 가만히 있는 거예요. 정말 딱 그림엽서 한 장인데, 너무 인상이
깊어서 메모해뒀죠. 앞의 두 이야기는 단편 아이템으로 시놉시스 정도를 따로 해놨고요.
그 당시 실제 사건이 터졌어요. 시골에서 한 노인이 조선족 여자애를 겁탈하고
임신시킨 사건이, 이 여자애가 도망쳐서 세상에 알려진 거예요. 노인은 노모랑 살고
있었는데, 그 노모는 그걸 묵인했고요. 그 얘기에 꽂혀서 세 번째 이야기를
구상하다가 꿈속의 장면이 마지막 장면으로 들어왔죠. 근데 세 이야기가 패턴이 똑같은
거예요. 제가 하고 싶은 얘기는 하나인데, 변주된 느낌이 들었고요. 그래서 세
이야기를 묶어보면서 다시 다듬고 A4 한 장으로 정리한 후에 그때부터 영화를
준비했죠.
본인 스스로 대한민국에서 여성으로 살아가면서 느꼈던 부분들일
것 같은데, 과연 어떤 것들이 이런 영화를 만들고 직설적으로 관객들에게 접근하게
한 걸까 궁금하더군요.
분명 여기에 직접경험도 들어갔고, 간접경험들은
막 뻥튀기가 된 거죠. 남이 던진 작은 돌멩이 하나에 아파 죽을
것 같아, 이러면서 쓴 시나리오니까요. 이 세 여성은 이성애자 여자, 게다가
사회생활이라는 게 사실 없잖아요. 가족 안에 있는 것이 삶을 영위하는 그
자체고. 또 어떻게 보면 천민 여성일수도 있고. 그런 천민, 이성애자, 여성도
아닌 여자로서 세상사는 게 얼마나 힘든가, 우선은 제가 그렇게 느꼈어요. 저는
천민, 이성애자 여자니까. 영화에서 여자를 범하는 남자도 있지만 아무것도 안하고 가만히
있는 남자들도 있거든요. 그런 남자들도 분명 이 여자들에게 상처를 준거예요. 폭력과
성적인 것은 물론이고, 세상의 무관심과 방임도 그렇고, 자그마한 일들 하나조차 얼마나
이 여자들을 나락으로 몰고 가는지. 사실 이 여자들은 자신들이 겪는 것에
대해 개선의 여지를 꿈꾸지도 않고 자기 합리화를 계속 해요. 고작 환상을
보는 정도? 아니면 상처를 보면서 예쁘다고 착각을 하는 정도. 그런 것
말고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으니까요. 할 수 있는
일이 너무 없다는 거, 그거 때문에 이 이야기를 쓴 거 같아요.
사회의 문제를 가족이라는 집단으로 축소해서 이야기를 풀어간
특별한 이유도 있을 것 같아요.
제가 그렇다고 가족의
폐쇄성에 한 맺힌 사람은 아닌데(웃음), 여자들이 첫 번째 겪는 이성이 가족
안에 있잖아요. 아버지이지만 이성이 아닌 것도 아니고, 남동생이건 오빠건 이성이잖아요. 이성이
주는 폭력을 극대화시키다보니까, 한마디로 여자가 거부하기 쉽지 않은 상황을 설정하다보니까, 가족
안으로 파고든 것이 있죠. 사실 여성들한테 그런 폭력이 주변에서 이뤄지는 경우가
많기도 하고요. 비단 피가 섞인 가족이 아닐 지라도요.
그런 문제를 가족으로 끌고 오고, 조금 더 확대해서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에서
근친이라는 것이 등장한 것 같아요. 어쩔 수 없이 주어진 상황을 현실로
받아들이길 바란 건가요, 아니면 좀 더 다른 의미를 부여하고 싶었던 건가요?
혈연관계가 주는 묘한 긴장이 있으니까 그런 것도 물론
있지만, 사실 주제적인 면에서 봤을 때는 가족 안에서의 국소적인 의미가 아니고
이 여자들이 체념하기에 가장 쉬운 측면에서 인거죠.
이
영화를 누구를 타깃층으로 만들었든지 간에 남자들도 볼 텐데요, 남자들에게는 소재 자체로
인해 관음증적 시선이나 호기심, 혹은 탐미적인 이유로 비쳐질 수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은 안 해봤나요? 그로인해 영화에 대한 시선이 변질될 수 있는 요인도
있을 텐데요.
제 시선이 굉장히 무성적이라는 얘기도 많이
들었는데, 제가 이 세 주인공들을 사랑하지 않으니까요. 어떻게 보면 애증의 시선인데,
그들이 당하는 폭력을 지켜보는 그런 입장도 있어요. 근데 그 당시에 제가
욕심이 확실히 있긴 있었어요. 예를 들어 아리따운 배우들의 샤워 신, 그런
것들은 굉장히 많잖아요? 그런 것들에 대한 반감이 분명히 있었으니까 초라한 창고에서의
뒷물 신을 넣고(웃음), 영화의 첫 장면도 초등학생 여자아이가 자위하는데서 시작을 하고.
영화라는 허울 안에서, 남성적인 시각으로 당연히 영화에서 보길 원하는 장면이 있고,
보고 싶지 않아하는 장면들이 있는데, 보고 싶지 않아하는 장면들을 대놓고 보여주고
싶은 생각이 있었죠. 돌이켜보면 저도 보고 싶지 않은 장면들이 너무 많은
영화인거예요(웃음). 저는 새 공포증이 있거든요. 촬영하면서 힘들었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오리를
담아내야했으며, 보고 싶지 않은 아버지의 분비물을 왜 앵글 안에 넣었는지. 그
당시에는 이 영화가 개봉을 제대로 할 수 있으리라고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여자로서나
영화 연출가로서나 이 얘기는 정말 꼭 하고 넘어가야하는 통과의례 같은 거였고,
이걸 지금 못하면 앞으로 여자이야기를 못할 것 같았고, 상업영화로도 진출하지 못
할 것 같았고, 영화라는 것을 다시 못할 것 같았어요. 4년 만에
찍었거든요. 정말 욕심이 많았죠. 이 영화를 찍으면서 약간은 제 자신을 치유한
것도 같아요. 굉장히 이기적인(웃음), 스탭들 고생시켜놓고(웃음).
순서와 상관없지만
어떻게 보면 한 여자의 연대기에 따른 성장기로도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왜 두 번째랑 세 번째가 순서가 바뀌었나
궁금해 하시던데, 그건 제가 생각한 게 아니거든요. 맹수진 평론가께서 초경, 폐경기,
가임기, 이렇게 임신을 기준으로 영화가 나뉘었다고 하던데, 그게 맞더라고요.
가족, 혈연이라는 의미로서의 피도 중요하게 사용됐지만 시각적인 피도 중요하게 사용됐어요.
첫 번째 이야기에서는 직접적인 근친이라는 소재가 등장하고, 대를 이어 순환되는 폭력으로
피의 의미가 드러나는데, 이를 표현하는데 있어 꽃잎, 초승달 모양으로 피를 형상화
했어요. 그렇게 함으로 인해 오히려 관객들이 이 여자가 당연하게 체념하면서 폭력을
받아들이는 느낌을 받게 될 수도 있으니 과연 메시지를 전달하는데 효과적이었을까 의구심도
들더군요.
이 영화의 전체를 하나로 묶어 얘기하면, 여성들이
느끼는 결핍과 수치심에 대한 영화라고 생각해요. 남성이 자기에게 줄 수 있는
것이 결핍밖에 없는데, 원하면 원할수록 그 결핍은 더 커지는 거고요. 어쩔
수 없이 합리화를 시켜야하는 부분이 많잖아요. 상처의 꽃잎으로 보이는 피는 앞으로
할 생리에 대한 복선, 혹은 첫 관계에 대한 복선인데, 제가 너무
패배주의적인 시각인지 모르겠지만 이렇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지 않나 싶었던 거죠.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달빛으로 인해 배가 불러오는 장면이 있는데, 달빛이 임신시킨 거라는
설정이었어요. 연기지도도 그렇게 했고요. 그런 식으로라도 자꾸 자신을 다독이고, 그렇게 합리화하는
거죠.
영화 첫 장면의 자위도 똑같이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그런 현실인가요?
나름 가장 진취적으로 자신의 욕망을 행동으로 옮기는 여자는 도연인데, 사실 하면 안 될 것들을 도연이는 다 하거든요. 어렸을 때부터 엄마들이 거길 만지면 절대 안 된다고, 지저분하고 더러우니까 그런 행동하면 안 된다고, 들어왔거든요. 근데 여자들은 해서는 안 될 것들을 하면서 느끼는 쾌락을 순수하게 즐길 수만은 없잖아요. 죄의식을 동반하고, 죄의식이 그 이상일 때도 많고. 첫 장면을 관객들이 어떻게 볼까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 아이를 관음증적으로 볼 것인지, 자위하는 것에 대해 물리적 판단을 할 것인지, 그런 것들도 궁금했고요. 오히려 관음증적으로 더 보게 만들면, 여자들의 쾌락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작은 목소리가 아닐까(웃음).
한편으로는
그런 생각도 들더군요. 관음증적인 시선도 있지만, 영화의 소재 자체에 천착해서 보게
된다면 근친의 경험을 여자가 몸으로 기억하고 잊지 못하는 걸로 볼 수도
있겠다고. 그렇다면 골치 아플 수도 있겠다 싶었거든요.
첫
장면이 현재고, 과거로 돌아가는 느낌을 받으신 분들도 많더라고요. 그렇게 해석해도 맞는다고
봐요. 아이가 손톱을 줍는다는 건 다 잊을 거야, 동시에 평생 잊지
않을 거야, 이런 의미가 다 있으니까요. 어차피 큰 변화 없이 그
상태로 쭉 살게 될 거니까, 그게 미래여도 상관없고, 과거여도 상관없는 거죠.
90년대 중반에 한창 성정치가 들어오던 시기에 성정치 강의를
들었는데, 강의를 듣던 여학생 100명 중에 자신의 성기를 직접 본 사람이
2명밖에 없어서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어요. 자신의 성기를 보는 것 자체를
터부시하게 교육받아 온 여성의 현실을 그때 처음 알게 됐고요. 그 이후로
10년이 훨씬 넘는 시간이 흘렀고, 물론 세상이 바뀐 것은 별로 없지만,
그래도 여자들의 현실과 인식이 조금은 바뀌지 않았을까 싶었는데, 제가 그 당시
느꼈던 충격이나 깨달았던 것들을 지금 젊은 여성 감독이 영화로 표현한 걸
보니, 감독이 올드한 면이 있는 건지, 세상이 변한 것이 없는 건지
궁금하더라고요(웃음).
제가 올드한 면이 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요즘 여성의 성적인 코드를 페미니즘 혹은 발랄한 시선으로 그린 영화들이 많았잖아요.
그런 영화들마저도 어떻게 보면 남성들이 보고 즐길 수 있는 범위 안에서만
발전한, 역시 판타지인 거죠. 물론 ‘섹스 앤 더 시티’라는 드라마가 영향을
많이 끼쳤다고 생각하는데, 보고 싶어 하는 것, 보고 거부 반응 없이
즐길 수 있는 범위, 딱 그 정도만 발전한 것 같아요. 그것도
발전이라고 한다면 말이죠. 에드워드 양 감독을 좋아해서 그런지 이 영화도 올드한
면이 있긴 하지만, 어쨌든 제 생각은 그래요.
영화에
판타지적인 요소가 등장하긴 하지만, 관객들에게는 판타지로 느껴지게 하고 싶진 않았던 거죠?
나름대로 거짓말 하고 싶지 않았어요. 거짓말 안하는, 언제한번
이런 영화를 해보겠나 싶었어요. 거짓말 많이 할수록 더 대중들과 편하게 소통할
수 있는데, 내가 계속 거짓말 안 하는 영화만 하면 앞으로 영화를
찍으면서 살진 못 할 테고(웃음), 나름대로는 솔직하게 한 번 해보자, 이런
영화 마지막일수도 있으니까 제대로 해보자, 이런 생각이 있었죠.
두 번째 이야기는 어디서 영감을 얻은 건가요?
봉사활동으로
치매에 걸린 할머니들과 지내면서 느꼈던 거예요. 치매에 걸리면 아이도 될 수
있고, 전혀 다른 사람이 되잖아요. 뇌수술을 받으면 성격도 달라진다고는 하지만, 아예
다른 영혼의 사람이 될 수도 있고. 세끼 밥과 약을 챙겨드리고 기저귀
갈아드리던 그때 생각이 들었죠. 다른 이야기는 어떤 식으로 처음에 생각을 했는지
기억이 나는데, 이 이야기는 전부터 꾹꾹 눌려 있던 얘기 인 거
같아요.
감독님이 생각하는 남자들은 도대체 어떤 족속인가요? (웃음)
엄마, 엄마, 하면서 매달리잖아요. 자식 같기도 하고. 어떨
때는 너무나 큰 폭력의 주체자이기도 한데, 정말 측은하기도 하고요.
정신이 헤까닥 하면서도 본능적으로 여자에게 폭력을 가하는 남자라니...
남자들은 본능적으로 자기중심적이니까요. 물론 이기적이지 않은 사람은 없겠지만, 태생적으로
이타적인 성향이 별로 없지 않나 싶기도 해요. 그런 것들이 주는 절망감들이
있죠. 상대방과 소통을 100%하고 싶어도, 어차피 타인이라서 안 되는 것도 있지만
그 상대방이 남성이기에 안 되는 것들도 많으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하고 싶었던
것 같아요.
어차피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살아갈 수밖에
없는 인생이긴 하지만, 변화를 모색하려 는 모습들은 보고 싶진 않았던 건가요?
그 당시에는 전혀 변화의 가능성이 앞으로 없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지금 준비하는 리틀 맘 이야기에서는 약간의 소통이라면 소통, 가능성을 믿어보고
싶은 생각은 있죠. 근데 그게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죠. 희망은 희망으로
끝나도 좋은 것들이 많으니까요.
결국 세 번째 이야기에서도
양아버지를 죽이는 것도 남자잖아요. 그렇다고 수진이의 삶이 달라지는 것도 아니고요.
수진이는 김씨가 죽기를 원하지 않았어요. 어떻게 보면 남자아이의 자기중심적인
우발로 죽인 거죠. 앞의 이야기에서도 대부분 그렇지만, 수진은 자기가 한 일이
아무것도 없어요. 교복 빨아주고, 밥하는 것 빼고는 하는 것이 아무것도 없는데,
계속 끌려 다니죠. 물론 안 그런 것도 있지만, 여자로 살면서 선택하는
것이 그렇게 많지 않잖아요. 오히려 선택받는 입장이니까... 올드하네요(웃음).
(웃음) 솔직히 영화를 보면서 죄책감 아닌 죄책감도 들었고, 어떻게 할 수
없는 막막함도 들었고, 그런 측면에서 봤을 때 소재를 떠나 불편하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화를 보고 일말의 죄책감을 느낀 사람으로서 어떻게 살아야할까를
생각해보기엔 무언가 여지가 남지 않는 영화이기에 더 막막하게 느껴졌고요. 감독님이 생각할
때 어떻게 변하면 좋겠다 싶나요?
사실 그 생각이
전혀 없어요(웃음). 어차피 변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아니까.
왜 변하지 않을까요?
이런 어려운... (웃음) 사실 알고
있잖아요.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없고, 작은 실천이 세상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물론 믿음이 있어야 모든 걸 할 수 있겠지만요. 이
두 사람은 영화 이후에 어떻게 됐을까 관객이 질문을 했는데, 죄송하지만 여기서
끝이라고, 이 이후에는 아무것도 없다고 얘기했어요. 그냥 흘러가는 거죠. 슬프지만 진실이라는
말을 좋아하거든요.
본인이 실제 살면서 무언가 변화되어가고 바뀌어간다는
느낌을 받은 적이 거의 없나보네요.
네. 뉘앙스는 달라지긴
하겠지만, 본질은 변하지 않는 거 같아요. 물론 지금 이렇게 말하는 저도
한 10년이 지나면 어떻게 변하게 될지 모르지만, 지금은 그래요.
그래도 세상과 현실을 똑바로 직시하려고 하는 영화들이 가치가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직시하고 바라봤을 때 변할 가능성도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실질적인 변화의 조짐과
움직임은 없더라도 그런 것들을 꿈꾸어야 계속 이런 영화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요?
저도 모순인 거 같아요. 그런 것들을 조금도
꿈꾸지 않았다면, 아까 말했던 뒷물 장면이나 자위 장면을 그렇게 안했겠죠. 알면서도...
(웃음)
당분간은 계속 여성들의 이야기에 집중할 생각인가요?
굉장히 극단적인 것 같아요. 대중영화도 좋아하고, 제일 좋아하는
감독도 사실 닐 조단이고, 상업영화를 만든다면 <뱀파이어와의 인터뷰>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고요.
이런 성향도 갖고 있는 사람이다 보니 여성 이야기 한 가지를 하고
있긴 한데, 최익환 감독님도 주인공을 여자 말고 남자로 풀어보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자꾸
하나에만 너무 꽂혀 있으면, 좋은 쪽으로 풀려서 시선이 성숙되면 좋겠죠. 근데
제가 순화된다는 느낌을 받으셨나봐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쩔 수 없이 상업영화는
상업영화대로 하고,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는 독립영화 안에서 병행해야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 둘을 동시에 충족시키는 영화를 할 수 있다면 좋겠죠. 하지만 여자
이야기로 거짓말 안하고 대중과 더 많이 소통할 수 있는 자신감이 지금
저한테는 없어요.
여자 김기덕 이라는 얘기는 어떤가요? 기분
나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실대로 말씀드리면, 저는
아무것도 아닌데 제 이름이 떡하니 들어가 있어서 처음에는 너무 기분 나빴어요.
홍보하시는 분이 김기덕 감독님한테 허락도 받고 쓰셨대요. 김기덕 감독님은 영화에 도움이
되면 써도 되지만, 오히려 이한나 감독이 걱정된다고 말씀하셨다는데(웃음). 서울독립영화제에서 좀 더
많은 관객들과 만나고 싶다고 말했는데, 여자 김기덕이라는 멘트 때문에 제 영화를
많이 선택하신 거예요. 어쨌든 독립영화는 보일 기회가 너무 적은데 사실 도움이
된 것도 분명 있고요. 그것 때문에 극장을 찾아가는 분들도 있을 테니
지금은 그냥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어요. 센 소재 때문에 그런 뉘앙스가 닮았을
뿐, 막상 영화를 보면 전혀 다르다는 걸 아실 테니까요.
김기덕 감독님의 영화 만드는 능력이 아니라 초창기 영화의 파격적 소재와
비견되며 붙여진 멘트니까 더 그렇겠죠. 차라리 여자 홍상수, 이러면 좀 나을
텐데(웃음).
(웃음) 그러게요. 무섭기도 해요. 멘트 하나였는데 몇
년 뒤에 발목을 잡을 지도 모를 일이니까요. 나이를 먹으면서 순화된다고 해야
하나요? <슬리핑 뷰티>를 지금은 못 찍을 것 같은 거예요. 그때는 이걸
안하면 죽을 것 같았는데 말이죠. 그래서 <아가미>도 더 나이 먹기 전에
빨리 해야겠다 생각을 했어요. 구스 반 산트 감독처럼 나이 들어 청춘을
바라보는 시선도 좋지만, 제가 서른을 넘기기 전에 꼭 해야 할 몇
가지 이야기들을 독립영화에서 꼭 해야 하지 않을까 싶은 거죠. 나중에 서른
넘어서 찍기 싫은 이야기들, 찍고 싶어도 못 찍을 이야기들이 있는 것
같아요.
사람들의 선입견이든 평가든 간에 감독은 작품으로 이야기하는
거고, 본인 스스로가 생각하고 있는 철학, 세계를 보는 시선 자체가 본질적으로
변하지 않는다면 방법적인 것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봐요. 스스로 부끄럽지 않은
영화를 하면 되는 것 아닐까요? 무뎌짐을 경계하는 것 자체는 좋지만, 그것에
너무 집착하진 않았으면 좋겠네요.
감사합니다. 정신 차려야죠(웃음).
상업영화 쪽에서 이야기 나오는 건 없나요?
말씀드리기에는 해프닝이나 짧은 만남이라서(웃음). 일단 작가부터 해보자는 제안이 있어서, 일단 그것부터
해보려고요.
작가로는 어떤 이야기를 할지 궁금하네요. 앞으로 어떤
감독이 되고 싶나요?
연출을 평생 하고픈 건 희망사항이죠.
의미 있는 영화라는 게, 없어도 될 뻔했던 영화보다는 있어서 어쨌든 의미
있는 영화. 말이 이상하지만(웃음), 세상을 바꿀 순 없을지언정 그 의미를 잃지
않는, 그렇게 조금씩 얻어가면서 영화를 찍고 싶어요.
인터뷰,
정리| 서정환 ppalma@joycine.com 사진| 최성열 tjddufchl@joycine.com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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